알콩달콩 사랑방

논개의 얼이 살아있는 진주 촉석루를 다녀왔습니다

사과선녀 2014. 6. 10. 01:12

 

논개의 얼이 살아있는 진주 촉석루를 다녀왔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진주남강

그 강물 위에 우뚝 솟은 바위

바로 의암 바위가 있는  진주 촉석루를 다녀왔습니다

​남강 변 벼랑 위에 있는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쪽 장대로서 장원루라고도 하는데

.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세운 후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사용하였고,

평상시에는 과거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 현재의 누각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진주 촉석루  함께 구경 해 볼까요~~

 

진주성입니다

조선시대의 전적지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의 전승지이기도 한 이곳은.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과 3,800명의 군사가

 3만 명의 왜적을 통쾌히 물리치고 승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촉석루  논개의 영정이 있는 의기사 마당에 있는

오죽의 꽃입니다

가을농원 선녀도 대나무 꽃은 처음 보는것 같습니다

 

대나무 꽃은 100년만에 필까 말까 하는 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대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진주성 밖으로 보이는 남강물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습니다

 

 

팽나무가 많더군요

팽나무에  핀 이끼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줍니다

 

 

 

촉석루 누각입니다

 

 

 

의암바위 가는 길입니다

이 가파른 길을 내려갈때  논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가파른 길 밑으로 보이는 진주 남강물~~

 

 

 

 

 

이바위가 바로  의암 입니다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입니다

 조선조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논개의 순국정신을 현창하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의암이라고 명명하였다고합니다.

 

 

 

 

 

가을농원 선녀도  의기 논개의 충절을 느끼고파

의암바위  위에 앉아 보았습니다

 

 

 

 

 

변영로 시인은 

아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 더붉은 그마음 흘러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또 

아리땁던 그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석류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이렇게 노래 했지요

그 속류꽃이 바로 이 꽃입니다

 

 

석류나무인데  참 사연이 많아 보이지요

 

 

 

 

 

의기 논개의 영정입니다

사회의 멸시를 받던 기녀의 몸으로

나라를 위하여 순국함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집권 사대부들의 편견때문에

그녀의 애국충정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주성민들이 논개의 의로운 행위를

정부가 당연히 표창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논개의 순국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의기 논개를 공식적으로 지칭하고

의암 사적비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석류꽃이 많이 있습니다

논개의 충절이 함께 뜨오르나요 ~~

기녀의 몸으로  나라의 ​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받친 논개의

그 숭고한 정신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호국보훈의 달 유월이 되었으면 합니다